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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콧병 전문의가 코수술 받아보니
이름 관리자 lifeineden@naver.com 작성일 12.12.24 조회수 2136
매주 10여명씩 코 후빈 지 20년…심각한 비염, 아내는 침대 밑 피신
늘 '참으세요' '곧 끝나요' 했지만 정작 내가 병원에서 치료 받았더니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너무 아팠다… 이제 환자 사정 이해할 수 있게 돼
 
이상덕 하나이비인후과병원장
 
나는 이비인후과 전문의다. 그중에서 콧병이 전문 분야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콧구멍을 들여다본다. 매주 10여명의 코를 내시경으로 후비며 수술을 해 온 지가 20년이 넘었다. 환자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시간보다 환자 콧속을 들여다보며 말한 시간이 더 길었다. 사람을 만나면 먼저 코 안과 밖이 보인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약간 코맹맹이 소리를 내면 콧속에 내시경을 쑥 들이밀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마치 그곳을 보면 그 사람의 속이 보이는 것처럼…. 물론 내 착각이다. 일종의 '직업병(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짐작은 했었다. 비염이 심각한 지경이라 수술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얘기다. 온종일 코가 막히는 것은 물론이고 밤에는 아예 이러다 질식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에 시달렸다. 막힌 콧구멍을 뚫어보겠다고 입을 꾹 다물고 배를 잔뜩 부풀려 콧김을 있는 힘껏 쏴 봤지만, 코막힘은 요지부동이었다. 일주일 이상 쓰면 큰일 날 것처럼 환자를 겁박했던 코 점막 수축제를 내가 구세주처럼 여기며 틈틈이 쓰게 됐다. 수시로 얻어지는 통공(通空)의 기쁨에 중독되어 갔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내 옆에 있어야 할 아내가 침대 아래로 요를 챙겨 피신했다. 코막힘의 동반자인 코골이에 내 인생의 '동반자'인 아내도 점점 지쳐갔다. 코골이도 이혼 사유가 된다는 말이 실감 났다.

코 안이 어떻게 됐나를 알기 위해 컴퓨터 단층촬영, CT를 찍었다. 코골이 때문에 수면다원검사도 했다. 결과를 보니, 내가 봐도 수술을 미룰 상황이 아니었다. 비후성 비염에, 1년 넘게 콧속에 점막 수축 스프레이를 분사해온 탓에 이젠 어떤 약물도 듣지 않는 약물성 비염까지 겹쳤다. 결국 나는 코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다. 코 전문의가 코 수술을 받아야 한다니…. 난감한 일이었다. 꽉 찬 진료 일정과 의료 관련 단체 일 등 줄줄이 대기한 일정을 제치고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한국 사회는 일하는 중간에 병으로 쉼표를 찍는 일도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마침내 수술대에 누웠다. 솔직히 무서웠다. '만에 하나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윽고 수면 마취로 한잠 자고 나니 수술은 끝나 있었다. 하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수술 부위에 출혈이 일어나지 않도록 코 안을 솜으로 겹겹이 눌러놓아 코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머리 전체에 묵직하고도 답답한 통증이 내리눌렀다. 수술 다음 날 솜을 빼고 퇴원할 때까지 정말 참기 어려웠다.
 
그래도 병원장이 환자이다 보니, 특혜를 받기는 했다. 다른 수술 환자는 퇴원 2~3일 후 내원해서 수술 부위 상처 치료를 하는데 나는 병원으로 매일 출근하니 하루에도 2~3번씩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치료받을 때마다 눈물이 쏙 빠졌다. 너무 아팠다. 내가 환자에게 상처 치료를 할 때는 '자~ 잠깐이면 됩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끝나요' 했지만 내가 직접 받아보니 잠깐만 견디고 조금만 참으면 되고, 말처럼 금방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후배 의사 앞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을 보여야 했다. 그 덕분인지 회복은 빨랐다.

사실 환자가 나 같은 지경이 돼서 병원을 찾아왔다면, '뭐 하느라 코가 이 지경이 되도록 버텼느냐?'고 잔소리했을 것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고 수술까지 하게 됐다고 말이다. 제발 코 좀 아끼고 사랑하라는 일장훈시도 늘어놨을 것이다. 코 수술은 금방 끝나고 며칠만 참으면 코로 숨 쉬는 날이 열릴 것이라고 평소 하던 대로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수술 이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환자가 아파도 병원에 못 오는 사정이 뭔지 이해하게 됐다. 수술을 결정하기까지 뭘 고민하는지도 알게 됐다. 수술실 침대가 얼마나 사람을 긴장시키는지, 수술 후 솜 패킹이 얼마나 답답한지, 상처 치료 과정이 얼마나 아픈지를 직접 내가 코 수술을 받으면서 느꼈다.

모든 의사가 나처럼 자기 전공 분야의 환자가 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콧병으로 고통받았지만, 내가 직접 앓았기에 얻은 게 참으로 많다. 의사도 때론 다양한 질병으로 환자가 된다. 모든 의사가 환자가 될 필요는 없어도 나을 수 있는 병이라면 한번 앓아봐도 괜찮을 듯싶다. 의사와 환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을 새겨볼 수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제 코로 숨 쉬는 아침이 얼마나 상쾌한지도 알게 됐다. 마지막으로 좋은 점 한 가지 더, 아내도 조만간 요를 개고 침대로 다시 올라올 것 같다. 이제 조용한 밤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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